좋은 아침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 - 49절을 이 아침에 묵상해 보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 어느 것도 확실해 보이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감에도 정작 삶에서는 많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부인할 수 없게 됩니다.
안그러면 더 좋을 텐데... 신앙 안에서 분명하게 살면 더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나의 믿음이 문제인가... 아니면 열심이 부족해서 인가... 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한 미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우리에게 분명하게 주어지는 부활의 모습입니다.
본문은 명확하게 육신의 몸과 부활한 몸에 대해 구분짓고 있습니다.
부활한 몸은 신비 자체입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몸은 분명 있는데 썩지 않습니다. 영광스러운 모습만 있습니다. 늙지 않고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삶이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더 나아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것을 막연하게 미래에 주어질 것으로만 여기면 현재 주어진 시간에서 진정 참된 평안과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부활은 분명 미래에 있지만 그러나 믿음은 현재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부활을 현재 나의 삶으로 가지고 와서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에 대해 확실한 믿음가운데 거하게 된다면 우리는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담대하게 됩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싸울힘이 생깁니다.
오늘 넘어져도 조급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부활할 미래가 분명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최종적인 부활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삶은 부활을 이미 안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전쟁터 입니다.
전쟁터에서 볼 때, 그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음을 보게 됩니다.
날마다 싸워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두려움만 존재합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두려움을 떨쳐 내고 평안가운데 거할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 신앙인 것이다. 내가 죽어도 죽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 어느 것도 두렵지 않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본문을 통해 이 부활의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을 보다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활의 첫 열매의 모습을 보여주셨듯이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 보고 몸으로 실천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온전한 부활은 미래에 있지만, 그러나 부활 신앙은 현재 우리가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원합니다.
이 부활 신앙으로 오늘 하루의 시간속에서도 평안을 온전히 누리며 모든 일에 여유를 가지고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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