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설교는 원고로 대신합니다.
지난 주 ZOOM으로 예배하면서 녹음이 원활하지 않은 관계로 원고를 올리게 됨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우드랜드 가족 교회 주일 예배 설교 박일환 목사 (07/03/2022)
본문: 사무엘상 1장 1절 – 3절
제목: ‘시대적 절망에도 엘가나가 있었으니…’
할렐루야! 한번 인사해볼까요? 자..서로서로를 보며 보고 싶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 교회가운데 그리고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풍성하게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서론
오늘 본문은 지난 주와 같은데 내용은 사무엘상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그 배경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기 원합니다.
본론
지난 번에 말씀드린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만 복을 누릴 수 있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통치를 외면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사람이 통치하는 왕국을 꿈꾸게 되었고 그들은 이방 나라들처럼 강력한 왕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무엘이 태어나기 전 가족의 배경을 그리고 종교적 상황을 먼저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엘가나라는 사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소유자, 하나님이 취하신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이것은 한글성경이 좀 혼동되도록 기록하고 있는데 역대상 6장에 보면, 사무엘이 레위지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제사장 역할은 오직 레위지파에서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무엘이 나중에 제사장 역할을 하게 되는 것도 그러한 출신의 배경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에브라임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뒤 땅을 기업으로 받지 않았던 레위지파는 각 지파의 땅으로 흩어져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엘가나 집안은 에브라임 지파의 땅에서 살아온 것입니다. 오늘 나오는 실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는 곳인 성소 중에도 중앙 성소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실로는 여호수아 18장에 보시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 동편을 정복한 후 성막을 설치한 장소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두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제사를 할 수 있는 장소도 있었지만 실로는 중앙 성소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우리가 큰 교회일 경우 여러 지역에 캠퍼스를 두게 되는데 마치 메인 캠퍼스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곳에 엘가나는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인 라마다임 소빔에서 중앙 성소가 있는 실로까지 매년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올라간 것입니다. 고고학적 자료에 보면, 20마일 정도 거리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엘가나가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 당시 우상을 섬기며 신앙의 양심이 무너진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신앙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매년 그렇게 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큰일이 아니겠지만 그러나 당시 분위기로서는 이러한 신앙은 매우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모세 율법에서 이스라엘 성인 남자들은 매년 3대 절기(유월절, 맥추절, 초막절)를 성막 그러니까 성소에 올라가서 지켜야 하는데, 사사시대를 지나는 동안 우상 숭배를 하면서 모든 것이 흐지부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절기 자체를 지키는 것도 힘든데 오히려 절기를 지키기 위해 먼거리를 일부러 성소까지 가서 지켰다는 것은 당시로는 보기 드문 대단한 신앙의 소유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롭게 말입니다.
오늘날 쉽게 더 쉽게 신앙 생활을 하려 하는 시대적 흐름이 있습니다. 특히, 제 작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이제 신앙생활에 있어서 새로운 페러다임이 요구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더 이상 교회 건물은 사라질 것이다. 필요 없다. 가상의 교회를 준비해야 한다. 물론 이 이야기가 시간이 더 지나면 앞으로 어떻게 증명될 지 모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제가 작년 인가 설교하다가 한가지 예를 들면서 미국 어느 신학교에서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자라고 믿는가라는 질문에 신학생 반이상이 아니라고 대답했다는 것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습니다. 이 신앙이 곧바로 교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가 이러한 생각으로 목회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러분, 누가 앞으로의 시대를 정확하게 내다볼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많은 인본주의적 신학적 요소들이 우리의 믿음에 더욱 더 영향을 줄 것이 확실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대부분이 우상을 섬기며 신앙이 변질되는 상황속에서 엘가나 만큼은 중앙 성소가 있는 실로를 찾았듯이 오늘날 인본주의적인 자유를 강조하는 시대적 흐름속에서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만큼은 성경속에서 길을 찾고 지켜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살펴볼 수 있는 배경은 엘리 대제사장 가문입니다. 이 내용은 벌써 잘 아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엘리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대제사장 아버지인 엘리와 함께 성소에서 섬겼는데 사실 이 둘은 이미 백성들에게 신뢰를 잃은 제사장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백성들 또한 이미 우상을 섬기고 살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뭐라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고 말씀을 가르쳐야 했던 그들은 백성들처럼 신앙적으로 무너진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무엘상 2장에 보면,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먼저 예물들을 취했고 거기다가 수종드는 여인들을 범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의 이유에 대해 2장에서 '그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즉, 교회가 무너지게 되는 가장 큰 핵심적인 이유는 사회적 상황이 아닙니다. 정치적 상황도 아닙니다. 전쟁 또한 아닙니다. 나라 뺏긴 슬픔도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문제의 중심이 아닙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중세 암흑기도 그랬고 하나님을 섬기던 나라가 타락해져 가고 망해가는 모습을 보더라도 결코 그것이 주된 이유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타락하는 세상 물결에 휩쓸려가는 모습에는 항상 교회 지도자의 무너짐이 먼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신앙을 저버리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하는 성경 해석이 주를 이루는 것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봐도 이 땅에 마지막 소망은 분명 교회에 있는데 아이러컬 하게도 교회가 먼저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과거를 보면, 소망이 없던 곳에 교회가 들어가 소망이 되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가 그 빛을 잃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될 이유가 여기에 충분하지 않습니까? 나의 믿음을 지켜줄 교회를 위해 모두가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결론
오늘 사무엘상 본문 배경을 살펴보면서, 당시 암울한 시대적 배경이 분명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먼 길을 오가며 제사를 드렸던 엘가나라는 사람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당시로는 굳이 그렇게 가지 않아도 제사 드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앙적으로 존경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시대가 아무리 우리의 신앙적 가치와 관심을 빼앗는다 할지라도 그 누군가는 말씀을 미련스러울 정도로 지키며 예배하는 삶을 지키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엘가나와 같은 사람은 어딘 가에 묵묵히 예배하며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모든 교회가 세상 가치를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교회 건물을 버릴지 언정 성도를 지키는 교회는 분명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는 소망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자리에 서 있기를 원합니다. 엘가나의 신앙이 우리의 믿음의 모습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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