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창세기 44장 14절 - 34절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가지고 가나안을 향해 가던 발걸음을 되돌려 돌아와
다시 요셉 앞에 서게 됩니다.
왜냐하면, 베냐민의 자루에서 요셉의 은잔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요셉이 베냐민을 곁에 두기를 원해서 꾸민 것입니다.
형제들에게는 전혀 생각지 못한 상황이 주어졌습니다.
그렇게 베냐민만 남게되는 상황에서 유다가 나서게 됩니다.
유다는 지난 날 애굽에 처음 올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일들에 대해 요셉에게 자세히 설명합니다.
베냐민에게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가 담보가 되어서라도 베냐민을 반드시 돌려 보낼 것을
아버지 야곱에게 약속한 부분을 말하게 됩니다.
유다는 지난 날 요셉을 살려 종으로 팔자고 제안할때도 그랬고
야곱을 설득하여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을 향할 때도 그랬고
지금 위기가운데서 요셉을 향해 설명하고 설득하며 간청하는 모습에서
그가 다른 형제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화평의 성품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공동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반드시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이 요구됩니다.
그럼에도 그 모습은 단순히 열심을 다하고 헌신하는 외형적인 것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 모습이 너무나 귀함에도 불구하고 안타깝지만 때로는 공동체를 힘들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요구되는 것이 화평입니다.
오늘 유다가 자신이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 중심에는
아버지 야곱을 생각하고 베냐민과 다른 형제들의 안전과 평화를 향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희생해서라도 그렇게 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향하는 헌신은 마음 자체만으로도 귀한 모습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좀 더 들어가면 결국 화평을 이루는 것이 요구됨을 보게됩니다.
그 문 앞에 반드시 서게 됩니다.
화평을 이루는 마음으로 공동체를 보게 되면,
열심이 단순한 열심이 아니게 되고 헌신이 단순한 헌신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안에 모인 곳입니다.
이곳은 나의 이름을 나타내는 곳도 아니며 또한 나의 귀함을 설득하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는 내가 가진 것으로 선을 이루며 화평을 이루어가는 곳입니다.
그 모습에는 열심으로 헌신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또는 조용히 도우며 기도하며 연약한 지체를 세밀하게 섬기는 모습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모습에 화평을 이루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오늘 유다가 그의 희생을 통하여 그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 이러한 모습을 이루어내는 열매들로 채워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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