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설교는
녹음 상태가 원활하지 않아 원고로 대신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1장 18절 - 23절
제목: "성탄의 의미(3): 임마누엘"
서론
우리가 지금까지 3주 동안 예수님의 탄생을 생각하면서 지내오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첫번째로 예수님의 오심이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의미속에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반드시 구원하시며 그의 자녀들을 책임지신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믿음안에 있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있음을 기억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절망가운데 있는 세상을 보시며 구원을 위한 계획을 세우시고 약속하신 그 말씀들을 이루려 하심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군자들처럼 예수님의 오심은 우연히 이 땅에 오신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고자 오신 목적이 있는 탄생이었음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 본문을 통해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본론
먼저, 본문에서 23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다시 보시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 구절은 이사야 7장 14절에서 정확하게 약 7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에 의해 선포된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께서 이 땅을 구원하시고자 하신 계획의 결정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은 죄로 인해 절망가운데 있는 세상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셨으며,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인 사람들을 온전히 해방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지만, 성탄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기는 내용이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기쁨과 즐거움은 하나의 축제의 이벤트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수단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죄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자유케하시며 구원을 허락하시기 위해 오신 생명과 소망의 성탄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통하여 구원함을 입은 자들이라면 이 날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즐기는 기쁨이 세상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삶의 본질을 바꿔 주신 예수님 앞에 마음을 다해 기뻐하며 감사하며 축하하는 성탄이 될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23절을 다시 보시면,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라는 뜻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의미를 너무나 좋아하고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
이것만큼 우리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고 든든하게 하며 안정감을 주는 의미가 또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이 의미가 하나님의 백성들로부터 불려 지고 고백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할 때에 ‘하리라’ 라는 동사의 원어 의미가 ‘그들이 부를 것이다’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그들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나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응답이 되고 약속의 성취가 되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의 완성을 의미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이상 이 땅에 구원의 다른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하여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불려 지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증거로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단순히 예수님이 이 땅에 평화를 주러 오신 모습으로만 기억하게 됩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보면, 성탄절 기간을 구원보다는 오히려 가는 곳마다 나라마다 ‘평화 평화로다’ 하며 거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평화의 의미는 이 땅에 더 이상 전쟁이 없고 다툼이 없고 고통이 없으며, 어두운 곳에 사랑을 전하며 서로 화합하는 의미로 바라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로 인해 끊어져 버린 하나님과의 화해를 말합니다. 이것이 본질입니다. 나의 삶의 의미가 사단의 권세 아래 놓인 죄인의 신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자녀의 신분으로 바뀌어져 버린 것,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평화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임마누엘이 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기서 제가 여러분에게 한가지 여쭙기를 원합니다.
진정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증거가 되십니까? 여기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위해 구원을 계획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부터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나에게 생명주시고자 계획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나에게 이루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한 부분을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땅을 창조하실 때부터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이루어질 모든 것을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심을 기억하며 주님의 나라 위해 살아 가시길 바랍니다.
결 론
함께 큰 소리로 해 보겠습니다.
임! 마! 누! 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할렐루야!!
이 사실을 우리가 믿음으로 새겨서 사는 동안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풍성하게 누리며 나누며 살아 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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