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13장 1절 - 12절을 묵상해 봅니다.
요나단이 자기 사람들과 함께 블레셋 수비대를 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의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서로 대치하게 됩니다.
모래알 같이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보고 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숨고 도망가고 흩어집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사울 또한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사울은 전쟁을 위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사무엘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기한이 되도록 사무엘은 도착하지 않자
불안하고 두려움으로 인해 사울 자신이 직접 화목제물을 취하고 번제를 드립니다.
제사를 마치자 사무엘이 당도하게 되고 사울에게 제사에 대한 부분을 지적합니다.
여기에 사울은 상황을 설명하며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다고 변명합니다.
오늘 문제의 발단은 요나단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사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블레셋에 대한 두려움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그들을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7: 47에 보면,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출애굽 당시부터 사사시대를 거치면서 줄곧 그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었습니다.
오늘 사울은 그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의 눈에는 맞은편에 진을 치고 있는 모래알 같이 많은 블레셋 사람들이 보이고
그런 데다 자기 백성들은 두려움에 빠져 숨고 도망가고 흩어짐만 보일 뿐입니다.
비록 상황이 이렇다 하더라도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 함에도 그는 자신의 두려움부터 해결하려 했습니다.
이 모습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어떤 위기 상황이 주어졌을 때, 우리 마음은 사울처럼 동일하게 움직입니다.
나의 두려움부터 해결할 것인가 ...
아니면 두려운 마음 그대로 내려 놓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일하심을 먼저 구하며 나아갈 것인가… 이 싸움이 됩니다.
사무엘상 4장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 자체를 의지함으로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사울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기 보다 제사 자체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제사가 중요함에도 제사보다 그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언약궤나 제사 자체가 능력의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생활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는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러함에도 그 자체를 행했다고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단지 내가 그 행위를 했다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그 속에 임재하시고 함께하시고
나에게 힘과 능력, 치료와 위로 그리고 회복과 생명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사울은 앞 선 언약궤 사건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는 동일한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제사 자체가 전쟁의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라 여긴 것입니다.
결국 그것으로 인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는 뼈 아픈 이유가 되고 맙니다.
저와 여러분이 신앙 생활의 실체가 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둘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신앙 행위를 마치 숙제 하듯이 그때 그때마다 행하며 만족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결코 내게 유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모든 신앙 행위는 하나님을 만나는 도구에 불과하며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으라고 주신 선물입니다.
언약궤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 제사가운데 받으시고 임재하시는 하나님,
그분이 우리 신앙의 삶에 실체가 되시는 생명의 삶을 살아가시길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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