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5장 23절 – 35절을 묵상합니다.
본문에서 아비가일은 나발에게 속한 모든 남자들을 치러 올라오는 다윗을 만나 담대하게 그리고 지혜롭게 다윗을 설득합니다.
그 모든 내용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그리고 다윗을 향한 진심을 담고 있습니다. 결국 다윗의 마음은 돌이키게 되고 아비가일을 오히려 칭찬해 주며 그의 간청을 들어주게 됩니다.
오늘 다윗을 설득하고 있는 아비가일의 마음을 보면서 몇가지 생각하게 됩니다. 아비가일은 먼저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연약함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이 모습이 선행되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크시고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그분을 바라볼 때에 연약함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의 긍휼하심과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냉정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모습 속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그 가치를 진정으로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우리가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받을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존재임을 비로소 알 때, 그만큼 그분의 사랑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비가일의 모습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그리고 감정에 휩싸인 다윗을 향해 냉철한 이성적인 모습으로 말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신앙은 크게 두가지 형태를 나타냅니다. 감정적인 모습과 이성적인 모습입니다.
감정적인 신앙의 특징은 매 순간 요동함을 보게 됩니다. 업엔 다운이 심합니다. 종잡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 진심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름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러한 사람을 경험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 모습에 반응하다 가도 시간이 지날 수록 반응을 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신뢰가 쌓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계는 신뢰없이는 결코 이어갈 수 없게 됩니다.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감정적인 모습에만 머물러 있다면 신뢰를 쌓기가 힘들어집니다. 신뢰가 약하기 때문에 늘 신앙이 요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성적인 신앙은 이것은 단순히 지식적인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모습을 지니게 됩니다. 말씀을 향한 신뢰를 가지게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말씀은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근거가 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붙들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잘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바로 내가 가진 신뢰가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 가는 이유, 섬기는 이유, 사랑을 나타내는 이유, 오늘 다윗처럼 마음이 누그러뜨려 지고 감정적으로는 도저히 안 되지만 그럼에도 용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말씀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본문 30절에 보시면, 아비가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것을 말씀하신 내용을 근거로 훗날 왕이 될 다윗을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 앞에 다윗의 마음은 결국 돌이키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말씀으로 다가오시고 그리고 말씀을 근거로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그분 앞에 나아가고 부르짖고 도우심을 구하는 모든 근거가 말씀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의지하며 나아갈 때에 그분은 우리를 위해 일하시게 돕니다. 이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막연하게 바라보지 말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도우심을 구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 삶가운데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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