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9장 1절 – 11절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블레셋 지역 중 하나인 가드로 망명한 다윗이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에 그의 사람들과 함께 전쟁터로 향하게 됩니다. 그 모습을 본 블레셋 지도자들이 그들은 이스라엘 히브리 사람들인데 왜 참전하느냐 라고 반대합니다.
그 때 가드 지역의 왕인 아기스가 지난 날 동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지켜본 결과에 대해 말하면서 신뢰할 수 있다고 변호합니다. 하지만 블레셋 방백들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사람임을 지적하면서 전장에서 자신들의 적이 될 수도 있음을 언급합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불러 전장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에 다윗은 왜 자신을 신뢰하지 않느냐고 불쾌한 마음을 전합니다. 결국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블레셋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다윗은 이렇게 사울을 피해 결국 고국을 떠나 이방 나라 중에도 가장 위협이 되었던 블레셋 지역으로 망명합니다.
사울은 그 사실을 전해 듣게 되고 더 이상 다윗을 쫓지 않게 됩니다. 목숨의 위협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그의 일행들을 지켜 주시고 계십니다.
아기스 왕이 망명한 다윗 일행에게 시글락이라고 하는 지역에 거주하게 합니다.
거기에 있는 동안 다윗과 그의 일행은 안전한 시간들을 보내게 됩니다. 이렇게 아기스 왕은 비록 전에는 대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윗을 신뢰하게 됩니다.
그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다윗이 함께 참전하려고 한 것입니다. 비록 블레셋 방백들은 여전히 의심할지라도 아기스왕 자신만큼은 다윗의 진심을 알았고 그들에게 변호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세밀하게 일하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분명 사무엘을 통하여 왕이 될 증표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자신의 민족인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지금 전쟁터를 향해 가고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사울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하더라도 사울에 대한 마음과 민족에 대한 마음을 동일하게 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개인이지만 지금 전쟁에 참전하는 것은 그의 민족인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대적하는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됩니다.
다윗은 이 부분에 대해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는 더 나아가 블레셋 방백들이 자신과 일행을 향해 히브리인으로 무시하며 의심하는 모습에 불쾌감을 드러냅니다.
만약 여기서 다윗이 일행과 함께 전쟁터에 참가했더라면 그는 이스라엘 왕이 되기 힘들뿐 아니라 그에게 있어서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왕으로 택하신 그를 막아주고 계심을 봅니다.
우리 또한 신앙생활 하면서 무엇이 주님의 나라를 위한 것인지 정확히 깨닫지 못할 때가 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주님 앞에서 고민하고 묻기 보다 나의 생각과 지혜를 믿고 판단하며 행할 때가 있습니다.
동일하게 만약, 하나님께서 부족한 우리의 입술과 우리가 행하는 판단가운데 세밀하게 일해주시지 않는다면 아마 수많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모습으로 주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짧은 지혜로 생각할 때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 여기고 행하지만 그러나 잊지말아야 하는 것은 그 가운데 우리가 생각지 못한 것까지 세밀하게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내게 은혜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오늘 다윗이 만약 전쟁에 참가했더라면 지금 망명하여 사는 삶에서 벗어나기가 불가능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대적임을 증명하는 모습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스라엘로 돌아오지 못하는 배반자가 되고 맙니다.
오늘 다윗을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함께하고 계심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의 한계를 넘어 일하시는 주님 앞에 기도로 아뢰며 우리가 기대하는 것 보다 훨씬 유익한 길로 반드시 선을 이루어 주실것을 확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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