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4장 19절 – 28절을 묵상합니다.
바울은 루스드라 사람들로부터 돌을 맞고 거의 죽게 되어 시 밖으로 버려지게 됩니다.
사실 루스드라 사람들은 불과 얼마전에 바울의 복음과 행함을 보고
바나바와 바울을 자신들이 섬기던 신으로 삼고자 했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유대인들의 충동에 마음이 넘어가게 되고
그로 인해 신처럼 여겼던 바나바와 바울을 돌을 던져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 모습은 우리에게 영적 분별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합니다.
동시에 우리 또한 이들처럼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가 따라가고 있는 신앙의 내용이 나로하여금 어떻게 만들어 주는지 보아야 합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처럼 단순히 외형적인 관심에 머물러 있게 하는지
또는 지식만 쌓여져 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나의 영혼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지 못합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내용만 보았기 때문에 하루 아침에 변하게 된 것입니다.
신앙은 내가 추구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이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관심을 바꿔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나의 삶을 복음을 향하게 하고 복음을 위해 가게 합니다.
오늘 바울은 겨우 몸을 일으키고 성치 않은 몸으로 다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게 됩니다.
그것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믿게되고 제자가 됩니다.
바울의 삶은 복음 그 자체였습니다.
다메섹 사건 이후 그의 삶가운데 지난 자신이 추구했던 가치를 전혀 드러내지 않습니다.
돌을 맞아도 오늘 같이 배반을 당해도 복음이 먼저인 삶을 보여줍니다.
저와 여러분이 분명 예수님을 믿으신다면 그것은 복음의 생명이 내게 주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은혜와 사랑이 주어지고 난 다음, 나의 삶이 무엇을 향해 무엇을 위해 가고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이 내게 들어온 후 복음에 대하여 설명이 가능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삶과 복음이 계속 연관성을 가져야 합니다.
연약한 모습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복음이 나를 터치하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아무리 귀하고 중하다 할지라도 복음의 터치에서 벗어나게 되면,
언제든지 오늘 루스드라 사람들처럼 어떤 내용에 사로잡힐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은 충분히 나의 영혼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고도 남습니다.
오늘 바울이 행한 모습은 무엇이 그를 주장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삶이 갈수록 닫혀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주장함으로 마음이 더 열려지게 되고 나눠지게 되고 품게 되고
더 자유로워지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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