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 : 1 ~ 2 : 1 말씀을 묵상합니다.
호세아서는 인간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요구하신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호세아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을 향하신 영적인 교훈을 담고 있음에 집중해야 함을 보게 됩니다.
호세아 선지자와 음란한 여인 고멜의 결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고발하고 계십니다.
호세아가 고멜과 결혼하여 낳은 자녀들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지 못하며 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짐을 의미합니다.
말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더 이상 소망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끝에 가서 하나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다시 소망의 메시지를 허락하십니다.
10절에 보면, ‘그러나’ 라고 시작하면서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을 바꿔 주십니다.
그 뜻은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그의 긍휼하심을 받은자가 됨을 뜻합니다.
시작이 절망으로 향하던 분위기가 다시 소망으로 회복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신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심판을 받기에 마땅한 삶의 모습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음에도 삶은 그것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일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삶과 흡사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우리가 기대고 있는 힘은 세상의 가치와 원리에 기울어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심지어 우리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내용들까지도 하나님의 관심사와는 먼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봅니다.
이렇게 두가지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당연히 긍휼함을 입지 못하며 회복이 주어질 수 없는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떠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그와 맺은 언약 때문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 또한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과 크게 다르지 않는 신앙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을 믿고 따르면서도 여전히 한 쪽에는 불신이 가득한 모습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약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눈은 우리를 덮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로 우리를 구속하신 그 사랑의 언약 때문에 우리의 삶이 여전히 연약함에도 소망이 있고 회복이 주어질 수 있게 됩니다.
혹시나 스스로 삶을 보시면서 실망이 되실 때, 그럼에도 나를 변함없이 온전히 품고 계시는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셔서 결코 소망을 놓지 않는 삶을 살아가시길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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