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35장 1절 ~ 34절 말씀을 묵상합니다.
본문은 도피성에 대한 말씀을 해주고 계십니다.
도피성의 원칙은 악의와 고의로 살인자 자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실수로 인한 죄에 대하여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합니다.
이렇게 도피성이 있다고 해서 모든 범죄에 대하여 피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도피성에 피한 사람은 당장은 죽음의 심판으로부터 면할 수 있었지만
완전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대제사장이 죽을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신앙생활 가운데 때로는 실수로 때로는 고의성을 가지고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고의성에 의한 죄에 대하여 용서받지 못하는 것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분명 죄의 해결을 의미합니다.
티끌 같은 죄의 흔적이라도 죄가 존재하게 되면 결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완전하게 의롭게 되어야 합니다.
죄에 대한 완전한 해결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에 대해 생각할 때,
죄인이라고 하는 명제가 어떻게 주어졌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와 그리고 죄의 용서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을 보아야 합니다.
죄는 인간이 스스로 고의성을 가지고 생산해 낸 결과물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가 스스로 하나님을 향해 도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땅에 죄가 들어온 것은 그들의 불순종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러나 먼저 사탄의 유혹이 있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씌워진 죄인이라고 하는 옷은 유혹으로 인하여 넘어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인 우리에게 도피성과 같은 장소가 됩니다.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대제사장의 죽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 죽음의 사건이 됩니다.
도피성에 피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완전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었듯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그에게 피한 자(믿는 자) 누구라 할지라도
죄로부터 완전한 용서와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을 때,
십자가 은혜를 단순히 천국가기 위한 도구로 믿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함을 얻기 위한 믿음은 반드시 자신이 죄인됨을 깨닫는 고백을 요구합니다.
도피성에 피했다고 하는 것은 고의성이 없는 실수임에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모습이 됩니다.
십자가는 바로 그러한 자에게 도피성으로 주어집니다.
아무리 십자가 은혜가 크고 귀하다 할지라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는 지나가는 은혜가 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과연 도피성과 같은 십자가 앞에서 죄인됨을 해결한 모습인지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흘리신 보혈의 피가 우리의 죄인됨을 해결한 은혜가 되어
구원의 감격속에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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