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장 1절 ~ 13절 말씀을 묵상합니다.
오늘 본문은 동족을 향한 바울의 심정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방인을 위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복음의 사도였습니다.
다메섹 석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의 인생은 이방인을 위해 복음을 전하다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복음의 길에 언제나 동족인 유대인들의 방해와 핍박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그러한 동족인 유대인들이 복음안에 있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복음의 은혜에서 끊어질지라도 그들이 복음안에 있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진심이었습니다.
그는 오늘 구원의 중요한 원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자들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비록 육신적으로 택하심을 입었지만 그럼에도 그들 또한 복음안에 있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약속이 주어졌다고 하는 것은 택함받은 은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구원이 행함에 의한 의로움이 아니라 택하신 은혜가 됩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함에 안심을 가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 바울은 끊임없이 그렇지 않다고 선포합니다.
신앙생활 자체는 자신 스스로 원하는대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할 수 있지만
그러나 약속 즉, 구원의 은혜는 반드시 나를 찾아오시는 은혜가 주어져야만 가능합니다.
오늘 바울은 복음을 외면하는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을 보며 가슴이 아플 정도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또한 가족들 가운데서도 복음에 있어서 만큼은 은혜가 주어지지 않으면 믿기 힘듦을 확인하게 됩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 조차도 마찬가지 입니다.
함께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함께 공유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두에게 동일하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슬프고 때론 두렵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의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신앙을 십자가 앞에서 철저히 확인해야 합니다.
약속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 누구도 판단하거나 정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판단은 오직 주님과 자신만의 일대일의 상황이 됩니다.
신앙생활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자리하는 것이 외형적으로 판단하는 모습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기준이 되어 직분자로 세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앙의 고백만큼은 십자가 예수를 만난 사실이 없으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신앙이 과연 약속의 은혜로 주어졌는지 십자가 앞에서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소망하기는,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삶이 십자가 앞에서 시작된 은혜의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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