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 25 ~ 36 을 묵상합니다.
오늘 본문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하여 묘사합니다.
구원은 그야말로 신비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입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복음되신 예수님을 거절하는 입장에 섭니다.
그로 인해 복음의 능력이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되게 되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시지 않으시고 그들을 향한 구원 계획을 여전히 가지고 계십니다.
바울이 구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그 중심에는 항상 은혜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은혜는 사실 이론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저와 여러분을 왜 택하여 주셨는지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바울은 그것에 대해 하나님의 일하심의 신비라고 설명합니다.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사실에 대하여 깨닫게 합니다.
하지만 지식 그 자체가 은혜의 감격을 포함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은혜는 지식과 함께 경험되어집니다.
이 은혜는 감정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만나 그 사랑을 알게 됨으로써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은혜에 대한 반응은 때로는 눈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눈물은 결코 신세 한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눈물에 대해 마치 은혜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의 성격은 세상 사람들이 흘리는 고단한 인생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십자가를 보더라도 단순히 고통당하시는 모습에 대한 아픈 마음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길을 가시는 은혜가 포함되어져야 합니다.
육신의 눈물은 마음을 위로해 줄지는 몰라도 나의 영혼에 대한 구원과는 상관이 없게 됩니다.
눈물은 같은데 다른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은혜의 눈물이 요구됩니다.
오늘날 교회안에 이 눈물이 메말라 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심지어 십자가를 묵상해도 오히려 그 앞에 있음이 불편함을 느끼게 합니다.
신앙의 삶이 은혜의 눈물이 없는 영혼이 메마른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바울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일이 신비일 뿐만 아니라 그분의 구원 계획에 대해 이해하기 힘듦을 보여줍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우리의 지식과 지혜로 이해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신비이고 은혜라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비록 설명할 수 없지만 나를 택하셔서 구원의 삶가운데 살아가게 하신 이 은혜를 온 맘 다해 감사하며 예배하며 살아가시길 축원 드립니다.
서비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