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4 : 13 – 23 을 묵상합니다.
오늘 본문은 공동체 가운데 신앙의 본질적인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으면 지체들에게 시험거리가 되는 일을 행하지 말 것을 권합니다.
스스로 신앙의 자유함이 있다 하더라도 지체를 근심하게 해서는 안 됨을 말합니다.
신앙안에서 자유함이 오히려 비방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유익이 된다고 말합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참 조심스러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먼저는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구원의 은혜와 죄의 정죄함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해방과 자유가 주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곧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본문
19절에서도 보듯이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 제목처럼 절제의 삶이 요구됩니다.
절제가 요구되는 이유는 나의 신앙이 다른 지체들에게 시험거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동체 가운데 요구되는 것은 판단하고 비판하기 보다 오히려 중보하는 모습이 요구됩니다.
교회 공동체는 중보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예외 없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부분에서 강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또 다른 부분에서는 약함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삶은 오히려 나의 연약함을 발견하는 삶이 됩니다.
강함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굳이 강함을 드러내기 보다 약함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을 겸손으로 이끄는 것이 지혜가 됩니다.
주님 안에 공동체가 가지는 강함은 약함을 드러내고 그것이 위로를 받으며 화평을 이루고 덕을 세워가는데 있습니다.
여기에 중보는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중보하지 않는 공동체는 결코 화평과 덕을 이룰 수 없습니다.
중보는 공동체와 나와의 부인할 수 없는 간격을 보여줍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온 곳에 중보가 자리하길 원합니다.
약함에 대하여 중보함으로써 서로 소망과 기대를 가지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고기든 포도주든 자유할 수 있지만 지체들을 위해서 안 먹는 것이 낫다고 권면합니다.
당시 가난한 성도들은 고기를 먹기 위해 시장에서 파는 우상 제물이 된 고기를 싸게 구해서 먹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연약한 자들이 시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믿음안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유할 수 있었지만 공동체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절제하는 것이 유익했습니다.
신앙생활은 먼저는 하나님 앞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삶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유함을 누린다 할지라도 공동체를 전혀 인식하지 않는 신앙은
바울이 말하는 의미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여줍니다.
몸이 공동체 안에 있다고 해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의미가 내 삶가운데 들어와야 합니다.
그것은 곧 중보로 나타나게 됩니다.
소망하기는 나의 강함보다 연약함을 드러내며 판단하기 보다 중보함으로 품는 교회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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