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3 ; 1 – 10 을 묵상합니다.
오늘 본문은 요나가 회개한 뒤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죄로 인하여 심판 앞에 놓여 있던 니느웨 사람들을 향해 회개의 말씀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밤낮 3일 동안 진실로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육지에 토하도록 만드십니다.
그리고 요나에게 니느웨 성 사람들을 향한 말씀이 두번 째로 주어지게 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 성 거리로 나가 40일 후에 성이 무너질 것을 선포합니다.
그러자 니느웨 사람들이 금식을 선포하고 왕과 모든 대신들까지도 진실로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악에서 떠나 진실로 돌이킴을 보시고 심판의 뜻을 거두시게 됩니다.
구원과 관련하여 성경이 보여주는 하나님의 성품은 긍휼함 입니다.
하지만 그 긍휼하심의 열매는 회개를 통해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회개가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사랑도 긍휼하심도 지나가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사람들이 지옥가고 멸망하는 것을 기뻐하시겠냐고 말합니다.
일차적으로 그 말은 맞는 말이 됩니다.
디모데전서
2장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놓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 이시지만 공의의 하나님 되심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반드시 공의를 통하여 이루시게 됩니다.
따라서 죄를 해결하시는 용서가 요구됩니다.
그 용서를 위해서는 회개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공의를 위해서..
구원은 공의가 무너진 상태에서 주어지는 무질서한 은혜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손상을 입기 때문입니다.
그의 거룩하심을 깨는 구원은 죄성을 가진 이기적인 인간의 바램일 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회개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죄인됨을 자백하는 회개는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은혜는 그러한 자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은혜이고 회개가 나를 향하신 그분의 긍휼함에 대한 선물이 됩니다.
아무도 심지어 나 자신의 의지로도 행할 수 없는 것이 죄됨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진정한 회개가 주어진 삶이라면 그것은 이미 구원 안에 들어와 있음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죄에 대한 자백을 넘어 그분을 인정하는 고백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 요한이 말하는 영접의 의미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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